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[youtube(7Y_Vh6zH8q8)]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로고. 단편 [[증기선 윌리]]의 한 장면이다. [[월트 디즈니]]와 로이 디즈니가 1923년 로스앤젤레스에 '디즈니 브라더스 카툰 스튜디오'를 설립했고 [[실사]]와 애니메이션을 합친 앨리스 단편 영화 시리즈를 약 3년간 제작했다.[* 1926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로 첫 번째 사무소로 옮길 때까지 주소를 여러 차례 변경하였다고 한다.] 이때 월트는 제작 및 사업에 전념하고 [[어브 아이웍스]]를 작화의 총괄감독으로 다시 불러 작화를 맡기도록 했다. 하지만 1928년 디즈니가 공들여 제작한 단편 애니메이션과 주연 캐릭터인 [[오스왈드 래빗]]의 판권을 [[유니버설 픽처스]]에 빼앗기자 새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. 디즈니는 영화에 음성을 삽입하기 위해 음악가 칼 스텔링과 사업가인 팻 파워스(1870~1948)와 접촉하여 [[미키 마우스]]의 출세작으로 여겨지는〈[[증기선 윌리]]〉부터 'cinephone'을 활용하여 세계 최초로 광학녹음 방식을 도입했다. 뒤이어 1929년 〈[[실리 심포니]]〉의 첫번째 작품 '해골 춤'을 만들어 또다시 히트했다. 작품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제작비는 갈수록 증가했으나 얼마 뒤 파워스와의 분쟁으로 수입금이 들어오지 않았다. 게다가 절친 [[어브 아이웍스]]도 월트 디즈니와 제작 관련하여 두 차례 언쟁을 벌인 뒤 독자 제작사를 세워 퇴사했다. 1929년 12월에 [[컬럼비아 픽처스]]와 새로운 유통 계약을 맺었지만, 컬럼비아와 협업하던 3년여 동안 애니메이터들이 작품이 성공하면 타 제작사에 고액으로 스카우트되었기 때문에 시리즈 제작에 차질을 겪기도 했다. 3년 후 1932년 실리 심포니 시리즈 단편 중 '꽃들과 나무들'을 최초 3색 테크니컬러로 제작해 미국 애니메이션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. 이때 테크니컬러 회사와 2년간 프로세스의 독점 계약을 체결했는데, 이는 [[루니 툰]]이나 [[뽀빠이]] 단편에 테크니컬러가 늦게 도입된 원인으로도 작용하기도 했다. 디즈니는 1934년 장편 영화 제작을 발표했는데, 이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던 당시의 대부분의 영화사들과 차별화된 시도였다. 1937년 첫 장편 애니메이션 〈[[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]]〉이 개봉하였고 배급은 [[RKO 라디오 픽쳐스]]가 맡았다. 개봉 후 큰 흥행을 거둬 스튜디오를 버뱅크에 위치한 브에나비스타 거리로 이전하는 데 한몫 해내었으며, 종업원도 1천여 명까지 증가했다. 1930년대 중반부턴 도날드 덕, 구피, 플루토 등 다른 캐릭터를 주역으로 내세운 단편의 제작을 늘려나갔다. 1940년대엔 〈[[환타지아(애니메이션)|환타지아]]〉와 선전용 영화 'Victory Through Air Power'의 흥행 실패로 인해 몇년간 장편 영화에 제작비 투자를 줄였고, 〈[[피노키오(애니메이션)|피노키오]]〉에서 활약한 9명의 애니메이터 '나인 올드맨'[* 레스 클라크, 마크 데이비스, 올리 존스턴, 밀트 칼, 워드 킴벌, 에릭 라슨, 존 라운즈베리, [[볼프강 레이더먼]], 프랭크 토머스까지 [[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]]부터 함께하여 1970년대 중반까지 활동한 디즈니의 원로 애니메이터들이다.]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. [[1941년]] [[12월]] 미국의 [[제2차 세계대전]] 참전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의뢰받아 〈[[총통각하의 낯짝]]〉 등의 선전용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해 많은 대중적 호응을 얻었으나 타 영화사들과 달리 적자로 한동안 고생했다. 게다가 직원이 1천여 명에 육박해지면서 종전의 가부장적이고 독단적인 제작 스타일로는 회사를 지탱하기 힘들었다. 스튜디오가 적자를 감당하기 위해 [[정리해고]], 임금 삭감,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중지, 주식 매각 등의 대책들을 발표하자 애니메이터들이 [[파업]]을 일으켰고, 피켓 대열은 사장인 [[월트 디즈니]]에게 "사이비 휴머니스트"라며 침을 뱉기까지도 했다. 해고된 이들 중 보브 캐논(Bobe Cannon), 존 허블리(John Hubley), 데이빗 힐버맨(David Hilberman), 월트 켈리(Walt Kelly), 스티븐 보스스튜(Stephen Bosustow) 등은 UPA를 설립해 독자적인 작품을 제작해나갔고, 이에 디즈니도 애니메이터, 연출가 등 스탭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면서 이전의 카리스마도 점차 사라졌다. 이후 1950년 〈[[신데렐라(애니메이션)|신데렐라]]〉, 1951년 〈[[이상한 나라의 앨리스]]〉, 1953년 〈[[피터 팬(애니메이션)|피터 팬]]〉을 만들어 호평을 받았으나, 정작 월트 디즈니는 자신이 작품 제작에 깊게 관여하지 않아 이같은 칭찬을 내켜하지 않았다. 1953년에 독자 배급사 [[브에나 비스타 디스트리뷰션]]를 설립하여 [[RKO 라디오 픽쳐스]]와의 협업을 끝내고 디즈니 영화들을 자체적으로 배급하게 되었다. 이 무렵부터 월트 디즈니는 TV 프로그램 제작과 [[디즈니랜드]] 공사에 더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제작은 주로 나인 올드맨과 디즈니 스튜디오 소속 애니메이터들이 담당했다고 한다. 그러나 대규모 제작비를 투입한 〈[[잠자는 숲속의 공주(애니메이션)|잠자는 숲속의 미녀]]〉의 흥행 실패로 1959년 디즈니 스튜디오는 대규모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. 그 뒤로 1960년대에 〈[[101마리의 달마시안 개]]〉와 〈[[정글북(애니메이션)|정글북]]〉으로 건재함을 과시했으나 1970년대엔 [[월트 디즈니]]의 사망과 스튜디오 경영진 교체, 베테랑 애니메이터들의 은퇴와 더불어 인기가 하락하였다. 1980년대 초반부터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애니메이션 제작에 활용하기 시작했고, [[마이클 아이스너]]와 [[제프리 카첸버그]] 등 새로운 경영진의 영입과 더불어 대규모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다. 그러나 제작했던 장편 영화들이 줄줄이 실패를 거두면서 디즈니 스튜디오는 실사 영화와 TV 프로그램 생산과 테마파크 확장, 해외 스튜디오 설립 등 문제를 헤쳐나가기 위한 방안들을 구상해 실행시킨다. 1989년 〈[[인어공주(애니메이션)|인어공주]]〉의 성공으로 [[디즈니 르네상스]]가 개막하였고, 1995년에 〈[[토이 스토리]]〉의 배급을 맡으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을 처음 시작한 [[픽사]]를 메이저급 회사로 발돋움해주는 데 기여하였다.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영진 간의 마찰과 [[권위주의]]적 행태 및 영화 흥행 실적의 감소로 인해 다시 한 번 침체를 겪고 2000년대에 암흑기를 맞이한다. 2006년 픽사 인수로 [[존 라세터]]가 디즈니와 픽사를 모두 총괄하게 되어 디즈니에 복귀하였다. 스튜디오 환경 쇄신과 더불어 〈[[볼트(애니메이션)|볼트]]〉-〈[[공주와 개구리]]〉-〈[[라푼젤(애니메이션)|라푼젤]]〉이 좋은 평가를 받고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두면서 디즈니의 부활, [[디즈니 리바이벌]]을 알렸다. 한국에선 1990년대에 인기를 얻었지만 본격적으로 3D 애니메이션으로 전환한 뒤에는 2014년 이전까지 100만 관객을 넘은 작품이 〈라푼젤〉 하나뿐일 정도로 [[드림웍스]]에 비해 대중성이 떨어졌으나 2014년 〈[[겨울왕국]]〉이 국내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중 최초로 [[천만 관객 돌파 영화|천만 관객을 돌파하며]] 위상이 높아졌다. 2018년 [[미투 운동]]의 여파로 [[존 라세터]]의 직원 대상 성추문이 밝혀지면서 불명예 사직했고 [[겨울왕국]]의 감독 [[제니퍼 리]]가 새 [[CCO]]에 선임되었다. 2022년 원로 애니메이터 [[에릭 골드버그]]가 다큐멘터리 [[스케치북(다큐멘터리)|스케치북]] 관련 인터뷰에서 [[공주와 개구리]] 이후 중단된 2D 애니메이션 제작을 재개한다고 밝혔다.[* [[https://screenrant.com/disney-animated-movies-future-2d-animation-updates/|Disney Returning To 2D Animated Movies, Says Aladdin Filmmaker]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